Poem(詩)/시에 젖다

그리움을 노래한 시

꽃이플 2012. 4. 19. 16:02

 

 

그리움을 노래한 시 모음

 

사모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해야할 말이 남아 있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움으로 잊어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는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 나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움 죽이기 (안도현)

 

칼을 간다

더 이상 미련은 없으리

예리하게 더욱 예리하게

이제 그만 놓아주마

이제 그만 놓여나련다

 

칼이 빛난다

우리 그림자조차 무심하자

차갑게 소름보다 차갑게

밤마다 절망해도

아침마다 되살아나는 희망

단호하게 한치의 오차 없이

내. 려. 친. 다.

아뿔사

그리움이란 놈,

몸뚱이 잘라 번식함을 나는 몰랐다

 

그립다는 것 (안도현)

 

그립다는 것은

가슴에 이미

상처가 깊어졌다는 뜻입니다

나날이 살이 썩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리움  ( 함용정 )

 

내 작은 소망이

빛을 발하는 시각

네온의 불빛이

등불처럼 곱다

 

그대 고운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와

내 가슴에 그리움 남길 때

남몰래 타는 가슴

숨어서 하늘을 본다

 

진솔한 마음이

모든 것을 인도하듯

그리운 마음으로

그대를 인도하고 싶다.

 

 

그리움 (오정방)

 

쌓이는 것은

낙엽 뿐이 아닙니다

세찬 바람은

저를 몰아 날릴 수가 있지만

머리 속에 문신처럼 새겨진

그리움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쌓이는 것은

눈송이만이 아닙니다

따가운 햇살은

저를 녹여 없앨 수가 있지만

가슴 속에 비문처럼 패어진

그리움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리움에 대하여 (오정방)

 

그리움은 사랑이다

결단코 말해서 그것은 사랑이다

 

누워 있거나 엎드러 있거나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걷고 있거나 뛰고 있거나

눈을 뜨고 있거나 감고 있거나

시간과 공간과 환경에 관계없이

머릿속에 온통

생각나는 것이 당신 뿐이라면…

사랑은 그리움이다

누가 뭐라해도 그것은 그리움이다

 

 

그리워한 죄밖에 (오정방)

 

무슨 죄가 있느냐고 따져 묻지를 마라

정말 그리워한 죄밖에는 없다

 

그딴 그리움 때문이냐고 비웃지 마라

당신도 당해보면 모두 다 안다

 

 

그리우면 가리라 (이정하)

 

그리우면 울었다. 지나는 바람을 잡고 나는 눈물을 쏟았다.

그 흔한 약속 하나 챙기지 못한 나는 날마다 두리번거렸다.

그대와 닮은 뒷모습 하나만 눈에 띄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들개처럼 밤새 헤매어도 그대 주변엔 얼씬도 못했다.

냄새만 킁킁거리다가 우두커니 그림자만 쫒다가

새벽녘 신열로 앓았다. 고맙구나 그리움이여,

너마저 없었다면 그대에게 가는 길은 영영 끊기고 말았겠지.

그리우면 가리라, 그리우면 가리라,고 내내 되뇌다 마는

이 지긋지긋한 독백, 이 진절머리나는 상념이여.

 

 

그리움이 길이 되어 (이정하)

 

비가 내립니다.

언제나 그렇듯 헤어질 시간은

빨리 다가오기 마련이지요.

그대도 아쉬운 듯 쓸쓸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애써 그 표정을 우산 속에 감추고 있었지만

우리 언제 다시 만날 것인가는

나는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대가 약속할 수 없다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다만 이 비가 언제 멈출 것인가

하늘만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약속할 수 없는 그대의 마음은 더욱 아프겠지요.

다시 만날 기약없이 헤어지는 당신인들

어디 마음이 편하겠어요.

하지만 난 믿고 있습니다.

약속은 없어도 우리 곧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길이 되어

그대에게 이르게 해줄 것이라고.

이 비가 언제 그칠까는 장담 못하지만

언젠가는 그치게 마련이듯

우리 마음이 있는 한

당신과 나는 만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비가 내립니다.

당신이 가고 난 지금,

비는 더 세차게 뿌립니다.

 

 

그립다는 것은 (이정하)

 

그립다는 것은

아직도 네가

내 안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지금은 너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볼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내 안 어느 곳에

네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그래서

내 안에 있는 너를

샅샅이 찾아내겠다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그래서

가슴을 후벼파는 일이다.

가슴을 도려내는 일이다.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이해인)

 

먼 하늘

노을지는 그 위에다가

그간 안녕 이라는 말보다

보고싶다는 말을 먼저하자...

 

그대와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아련한 노을함께 보기에 고맙다

 

바람보다, 구름보다

더 빨리 가는 내 마음,

늘 그대 곁에 있다.

 

그래도 보고 싶다는 말보다

언제나 남아 있다는 말로 맺는다.

 

몸과 마음이

무게를 덜어내고 싶을 때마다

오래도록 너를 그리워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벼워야 자유롭고

힘이 있음을 알고 있는 새야

 

먼데서도 가끔은

나를 눈여겨보는 새야

나에게 너의 비밀을

한 가지만 알려주겠니?

 

모든 이를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끈끈하게 매이지 않는 서늘한 슬기를

멀고 낯선 곳이라도

겁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담백한 용기를 가르쳐주겠니?

 

그리움 ( 이용학)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운

작음 마을에도 복된 눈이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