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에 관한 시
구절초의 북쪽
❀ 안도현
흔들리는 몇송이 구절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 본 적이 있는가?
흔들리기는 싫어, 싫어, 하다가
아주 한없이 가늘어진 위쪽부터 떨리는 것
본 적 있는가? 그러다가 꽃송이가 좌우로 흔들릴 때
그 사이에 생기는 쪽방에 가을햇빛이
잠깐씩 세들어 살다가 떠나는 것 보았는가?
구절초, 안고 살아가기엔 너무 무거워
가까스로 땅에 내려놓은 그늘이
하나같이 목을 길게 빼고, 하나같이 북쪽으로
섧도록 엷게 뻗어 있는 것을 보았는가?
구절초의 사무치는 북쪽을 보았는가?
구절초꽃
❀김용택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 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에
산 너머 그 너머 검은 산 너머
서늘한 저녁 달만 떠오릅니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듭니다
소쩍새만 서럽게 울어댑니다
구절초
❀ 박용래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구절초
❀ 유 안진
들꽃처럼 나는
욕심 없이 살지만
그리움이 많아서
한이 깊은 여자
서리 걷힌 아침나절
풀밭에 서면
가사장삼(袈娑長衫) 입은
비구니의 행렬
그 틈에 끼여든
나는
구절초
다사로운 오늘 별은
성자(聖者)의 미소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구절초 시편
❀ 박기섭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 듣습니다
살다 보면 웬만큼은 떫은 물이 든다지만
먼 그대 생각에 온통 짓물러 터진 앞섶
못다 여민 앞섶에도 한 사나흘 비는 오고
마을에서 멀어질 수록 허기를 버리는 강
내 몸은 그 강가 돌밭 잔돌로나 앉습니다
두어 평 꽃밭마저 차마 가꾸지 못해
눈먼 하 세월에 절간 하나 지어놓고
구절초 구절초 같은 차 한 잔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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