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ry(景)/꽃, 풍경, 여행

세종시 영평사 구절초

꽃이플 2012. 10. 8. 10:12

 

 

 

 

 

 

 

 

 

 

 

구절초에 관한 시

 

구절초의 북쪽

                               ❀ 안도현

 

 

흔들리는 몇송이 구절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 본 적이 있는가?

흔들리기는 싫어, 싫어, 하다가

아주 한없이 가늘어진 위쪽부터 떨리는 것

본 적 있는가? 그러다가 꽃송이가 좌우로 흔들릴 때

그 사이에 생기는 쪽방에 가을햇빛이

잠깐씩 세들어 살다가 떠나는 것 보았는가?

구절초, 안고 살아가기엔 너무 무거워

가까스로 땅에 내려놓은 그늘이

하나같이 목을 길게 빼고, 하나같이 북쪽으로

섧도록 엷게 뻗어 있는 것을 보았는가?

구절초의 사무치는 북쪽을 보았는가?

 

 

구절초꽃

                       ❀김용택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 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에

산 너머 그 너머 검은 산 너머

서늘한 저녁 달만 떠오릅니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듭니다

소쩍새만 서럽게 울어댑니다

 

 

 

구절초

                         ❀ 박용래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구절초

                  ❀ 유 안진

   

들꽃처럼 나는

욕심 없이 살지만

 

그리움이 많아서

한이 깊은 여자

 

서리 걷힌 아침나절

풀밭에 서면

 

가사장삼(袈娑長衫) 입은

비구니의 행렬

 

그 틈에 끼여든

나는

구절초

 

다사로운 오늘 별은

성자(聖者)의 미소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구절초 시편

                         ❀ 박기섭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 듣습니다

살다 보면 웬만큼은 떫은 물이 든다지만

먼 그대 생각에 온통 짓물러 터진 앞섶

못다 여민 앞섶에도 한 사나흘 비는 오고

마을에서 멀어질 수록 허기를 버리는 강

내 몸은 그 강가 돌밭 잔돌로나 앉습니다

두어 평 꽃밭마저 차마 가꾸지 못해

눈먼 하 세월에 절간 하나 지어놓고

구절초 구절초 같은 차 한 잔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