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見)/책 속의 慰安

고독을 음미하다(생각버리기 연습2에서 발췌)

꽃이플 2012. 10. 1. 14:54

 

고독을 음미하다

 

       코이케 류노스케의 생각버리기 연습2에서

 

고독을 음미하고, 평온한 마음의 달콤함을 여유롭게 음미한다면,

홀로 자신의 마음과 대면해 보는 평온함을 알게 된다면, 이렇게 고독의 힘을 되찾아 상실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면, 당신 안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 부정적인 감정은 모두 소멸하게 될 것이다. 진리, 마음의 인과법칙을 알게 되었다는 기분 좋음을 음미하면서.

 

   요즘 사람들은 휴대폰 SNS로 다른 사람들과 쉽게 연결할 수 있다. 이는 유대감이 뒷받침된 진정한 연결이 아니다. 말은 빈번하게 오가지만 순간순간 떠오르는 말로 소통함으로써 사람들을 더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서로가 나눈는 말의 질이 너무 가벼운 나머지 외로움은 더 커진다.

  처음부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처음의 충동적인 외로움을 마음에 두고 고독을 참아내는 동안 그 외로움은 끝나게 될 것이다. 외로움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다른 사람과의 연결만을 생각하는 현대인들은 고독이나 외로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연인과의 연결만을 초조히 기다리며 짜증으로 얼룩진 하루는 보낸 이가 연인의 늦은 연락에 애꿎은 연인에게 감정이 폭발해 급기야 다투는 지경에 이른다. 오늘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운수 없는 날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애초에 초조해하지 않았더라면 싸우거나 화내지 않고 끝낼 수 있는 일이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감정이 폭발해 하루를 망쳐버린 것은 아닐까?

    한 번 분노의 불꽃이 마음에 점화되면, 마음의 습성은 분노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면서 보다 강력한 분노를 만들어 내려는 충동이 강해진다. 이 때문에 나쁜 결과로 스스로를 몰아가게 된다. 이미 마음에 분노가 생겨나있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울화가 치미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앞에 있는 상대와도 연결되지 못하고 고립을 자초한다.

    상사의 잔소리에 화가 나거나 연인의 냉랭한 모습에 화를 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세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에 의한 환상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자신이 쌓아둔 업에 갇혀서 고독하다.

각 개인의 하루는 다른 사람의 하루와 서로 독립되어 있고,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살아갈 일주일, 한달, 일년 그리고 일생도 서로 독립되어 있다. 다만 그 안에서 한 순간, 한 때만 잠시 연결될 뿐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각각의 사람이 독립된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알게 되면 어떨까.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그의 업의 충동이 그 사람 마음에 작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설프게 상대방을 책망하거나 공격하지 않게 되고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고독한 자기세계 내면에 감추어진 문제를 직시하는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다.

 

세상을 공유한다는 환상이 많은 폐해를 낳는다

   태어날 때부터 똑같은 경험을 해도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누군가에게 기억을 복사해서 이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공유했다는 환상에 빠져 서로가 통했다는 착각을 한다.

   어떤 의미에서 각각의 사람마다 우주가 존재하고 있어서 서로 교류하고 감정을 나누지만 혼자만의 우주에 고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자기 우주에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원흉은 외로워, 나를 사랑해줘라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이다.

   인간은 외로움을 잘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연결되었다거나 공유되었다고 착각하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인간관계가 꼬인다. 즉 필사적으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엮으려 하기 때문에 어려움에 빠진다.

   고독을 받아들이고 삭이지 않으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상대를 원하는 감정이 폭발하고 더욱 외로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마다 각각의 우주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11의 인간으로써 접하면 어떻게 될까. 부부일지라도 부모와 자식간이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신선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실은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하고 깨끗하게 정리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세계는 다른 사람의 세계로써 존중할 수 있고, 서로 독립된 현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