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행복하라
며칠 동안 펑펑 눈이 쏟아져 길이 막힐 때
오도 가도 못하고 혼자서 적막강산에 갇혀 있을 때
나는 새삼스럽게 홀로 살아 있음을 누리면서
순수한 내 자신이 되어
둘레의 사물과 일체감을 나눈다.
그리고 눈이 멎어 달이 그 얼굴을 내보일 때
월백설백천지백의 황홀한 경계에
나는 숨을 죽인다.
살아 있는 모든 이웃들이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날마다 출가하라
나는 줄곧 혼자 살고 있다.
그러니 내가 나를 감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행이 가능하겠는가?
홀로 살면서도 아침저녁 예불을 빼놓지 않는다.
하루를 거르면 한 달을 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삶 자체가 흐트러진다.
우리는 타성에서 벗어나야한다.
그것은 생명이 요구하는
필수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타성의 늪에서 떨치고 일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저마다 자기 일상생활이 있다.
자기의 세계가 있다.
그 일상의 삶으로부터 거듭거듭 떨쳐버리는
출가의 정신이 필요하다.
머리를 깎고 산이나 절로 가라는 것이 아니다.
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정신이 필요하다.
홀로 있으려면
최소한의 인내가 필요하다.
홀로 있으면 외롭다고 해서 뭔가
다른 탈출구를 찾으려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의 자기 영혼의 투명성이
고이다가 사라져 버린다.
홀로 있지 못하면 삶의 전체적인 리듬을 잃는다.
홀로 조용히 사유하는,
마음을 텅 비우고 무심히 지켜보는 그런 시간이 없다면
전체적인 삶의 리듬 같은 것이 사라진다.
삶의 탄력을 잃게 된다.
산
산을 건성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산에 오르면
산에 오르면
사람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무의미한 말의 장난에서 벗어나
입 다물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 있어야한다.
지금까지 밖으로만 향했던 눈과 귀와 생각을
안으로 거두어 들여야 한다.
그저 열린 마음으로 무심히
둘레를 바라보면서 쉬어야 한다.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가장 편한 마음으로 자연의 숨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 언어로 인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눈멀어 왓고 귀먹어 왔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남의 얼굴만을 쳐다보다가
자신의 얼굴을 까맣게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남의 말에 팔리지 말고
자기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이룰 수 없다.
자연은 때묻고 지친 삶들을 맑혀 주고
쉬도록 받아 들인다.
우리는 그 품안에 가까이 다가가
안기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사랑했는가
알베르 까뮈는 말했다.
‘우리들 생애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놓고
심판 받을 것이다.‘
타인을 기쁘게 해줄 때
내 자신이 기쁘고
타인을 괴롭게 하면
내 자신도 괴롭다.
타인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 타인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내 자신의 영적인 평화도 함께 따라 온다.
감정은 소유되지만 사랑은 우러난다.
감정은 인간 안에 깃들지만
인간은 안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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