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經)/無碍歌

다 행복하여라 외(법정 스님)

꽃이플 2011. 7. 15. 05:48

 


다 행복하라

 

며칠 동안 펑펑 눈이 쏟아져 길이 막힐 때

오도 가도 못하고 혼자서 적막강산에 갇혀 있을 때

나는 새삼스럽게 홀로 살아 있음을 누리면서

순수한 내 자신이 되어

둘레의 사물과 일체감을 나눈다.

 

그리고 눈이 멎어 달이 그 얼굴을 내보일 때

월백설백천지백의 황홀한 경계에

나는 숨을 죽인다.

 

살아 있는 모든 이웃들이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날마다 출가하라

 

나는 줄곧 혼자 살고 있다.

그러니 내가 나를 감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행이 가능하겠는가?

홀로 살면서도 아침저녁 예불을 빼놓지 않는다.

하루를 거르면 한 달을 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삶 자체가 흐트러진다.

 

우리는 타성에서 벗어나야한다.

그것은 생명이 요구하는

필수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타성의 늪에서 떨치고 일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저마다 자기 일상생활이 있다.

자기의 세계가 있다.

그 일상의 삶으로부터 거듭거듭 떨쳐버리는

출가의 정신이 필요하다.

 

머리를 깎고 산이나 절로 가라는 것이 아니다.

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정신이 필요하다.

 

홀로 있으려면

최소한의 인내가 필요하다.

홀로 있으면 외롭다고 해서 뭔가

다른 탈출구를 찾으려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의 자기 영혼의 투명성이

고이다가 사라져 버린다.

 

홀로 있지 못하면 삶의 전체적인 리듬을 잃는다.

홀로 조용히 사유하는,

마음을 텅 비우고 무심히 지켜보는 그런 시간이 없다면

전체적인 삶의 리듬 같은 것이 사라진다.

삶의 탄력을 잃게 된다.

 

 

 

 

산을 건성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산에 오르면

 

산에 오르면

사람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무의미한 말의 장난에서 벗어나

입 다물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 있어야한다.

지금까지 밖으로만 향했던 눈과 귀와 생각을

안으로 거두어 들여야 한다.

 

그저 열린 마음으로 무심히

둘레를 바라보면서 쉬어야 한다.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가장 편한 마음으로 자연의 숨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 언어로 인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눈멀어 왓고 귀먹어 왔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남의 얼굴만을 쳐다보다가

자신의 얼굴을 까맣게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남의 말에 팔리지 말고

자기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이룰 수 없다.

 

자연은 때묻고 지친 삶들을 맑혀 주고

쉬도록 받아 들인다.

우리는 그 품안에 가까이 다가가

안기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사랑했는가

 

알베르 까뮈는 말했다.

‘우리들 생애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놓고

심판 받을 것이다.‘

 

타인을 기쁘게 해줄 때

내 자신이 기쁘고

타인을 괴롭게 하면

내 자신도 괴롭다.

 

타인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 타인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내 자신의 영적인 평화도 함께 따라 온다.

 

감정은 소유되지만 사랑은 우러난다.

감정은 인간 안에 깃들지만

인간은 안에서 자란다.

 

 

 

 

 


 

참고 견딜만한 세상

 

저마다 자기 나름의 꽃이 있다.

다 꽃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옛 성현들이 말했듯이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꽃을 피워 낼 수 없다.

하나의 씨앗이 움트기 위해서는

흙 속에 묻혀서 참고 견뎌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바세계

참고 견디는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에 감추어진 삶의 묘미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세상이

사바세계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

극락도 지옥도 아닌 사바세계

참고 견딜만한 세상

여기에 삶의 묘미가 있다.

 

 

 

다시 길을 떠나며

 

이 봄에 나는 또 길을 찾아 나서야겠다.

이곳에 옮겨와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는 새로운 자리로 옮겨볼 생각이다.

수행자가 한곳에 오래 머물면

안일과 타성의 늪에 갇혀 시들게 된다.

다시 또 서툴게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영원한 아마추어로 새 길을 가고 싶다.

 

묵은 것을 버리지 않고는

새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내 자신만이 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그 누구도 내 삶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나는 보다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없는 듯이 살고 싶다.

나는 아무것도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나는 내 삶을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않고

그 누구도 닮지 않으면서

내식대로 살고자 한다.

 

자기 식대로 살려면

투철한 개인의 질서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 질서에는 게으르지 않음과

검소함과 단순함과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음도 포함된다.

 

그리고 때로는 높이높이 솟아오르고

때로는 깊이깊이 잠기는

그 같은 삶의 리듬도 뒤따라야 한다.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침묵을 익힌다는 말이다.

침묵은

자기 내면의 바다이다.

 

진실한 말은

내면의 바다에서 자란다.

 

자신만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남의 말만 열심히 흉내내는

오늘의 우리는 무엇인가?

 

듣는다는 것은

바깥 것을 매개로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소리를

깨우는 일이다.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은

그 말에서 자기 존재를 발견한다.

그러나 자기 말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런 구절이 있다.

‘별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남한테 전하려면

그것에 필요한 말이 우리 안에서 먼저 자라야 한다.‘

말이 되기까지는 우리들 안에서

씨앗처럼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듣는다는 것은

자기 것을 비우기 위해

침묵을 익히는 기간이다.

 

 

 

말과 침묵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침묵을 지키지만

마음속으로 남을 꾸짖는다.

그는 쉼없이 지껄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하지만

침묵을 지킨다.

필요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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