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 랑 의 시 노래
눈물에 실려가면 산길로 칠십리 돌아보니 찬바람 무덤에 몰리네 서울이 천리로다 멀기도 하련만 눈물에 실려가면 한 걸음 한 걸음
뱃장 위에 부은 발 쉬일까보다 달빛으로 눈물을 말릴까보다 고요한 바다 위로 노래가 떠 간다 설움도 부끄러워 노래가 노래가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럴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 것네
숲향기
숲향기 숲길을 가로 막았소 발끝에 구슬이 깨이어 지고
달따라 들길을 걸어 다니다 하룻밤 여름을 세워 버렸소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님 두시고 가는 길 좁은 길가에 무덤 풀 위에 맺어지는 이슬 저녁 때 외로운 마음 향내 없다고 애닯은 입김 뵈지도 않는 입김
숲향기 숨길 다정히도 불어 오는 바람 무너진 성터 어덕에 누워 푸른 향물 허리띠 매는 시악시 그 색시 서럽다
산골 시악시 못 오실 님 빠른 철로에 조는 손님 밤 사람 그립고야 구름 속 종달 외론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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