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詩)/시에 젖다

김영랑의 시

꽃이플 2012. 2. 20. 11:25

 

 

 

 

 

김 영 랑 의 시

노래

 

눈물에 실려가면 산길로 칠십리

돌아보니 찬바람 무덤에 몰리네

서울이 천리로다 멀기도 하련만

눈물에 실려가면 한 걸음 한 걸음

 

뱃장 위에 부은 발 쉬일까보다

달빛으로 눈물을 말릴까보다

고요한 바다 위로 노래가 떠 간다

설움도 부끄러워 노래가 노래가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럴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 것네

 

숲향기

 

숲향기 숲길을 가로 막았소

발끝에 구슬이 깨이어 지고

 

달따라 들길을 걸어 다니다

하룻밤 여름을 세워 버렸소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님 두시고 가는 길

좁은 길가에 무덤

풀 위에 맺어지는 이슬

저녁 때 외로운 마음

향내 없다고

애닯은 입김

뵈지도 않는 입김

 

숲향기 숨길

다정히도 불어 오는 바람

무너진 성터

어덕에 누워

푸른 향물

허리띠 매는 시악시

그 색시 서럽다

 

산골 시악시

못 오실 님

빠른 철로에 조는 손님

밤 사람 그립고야

구름 속 종달

외론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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