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詩)/시에 젖다

예이츠의 시

꽃이플 2012. 5. 17. 12:40

 

 

William Butler Yeats 예이츠 시 모음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을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은 온통 은은히 빛나고,

한낮은 자주빛으로 타오르며,

저녁엔 홍방울새의 날개 소리 가득한 그 곳.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낙엽(The Falling of the Leaves)

 

가을은 우리를 사랑하는 긴 잎새들 위에도

머리 위 로웬나무 잎사귀도 노랗게 물들고

젖은 들딸기 잎도 노랗게 물들었다.

 

사랑이 시드는 시간이 닥쳐와

이제 우리들의 슬픈 영혼들도 지칠 대로 지쳤다

자 우리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수그린 이마에 입맞추고 한 방울 눈물을 남기고서...

 

 

술노래(Drinking Song)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그것 뿐.

나는 입에 잔을 들며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짓는다.

 

 

버드나무 정원에서(Down By The Salley Gardens)

 

버드나무 정원에서 그녀와 나 만났었네.

눈처럼 흰 작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나뭇가지에 잎이 자라듯

사랑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난 젊고 어리석어 그녀의 말 들으려 하지 않았네.

 

강가 들판에서 그녀와 나 서 있었네.

기대인 내 어깨 위에 눈처럼 흰 손을 얹으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서둘지말라고.

그러나 젊고 어리석었던 나에겐

지금 눈물만 가득하네.

 

덧없어라(Ephemera)

 

「예전엔 지칠줄 모르고 내 눈을 들여다 보던 그대의 눈이

이제는 망설이는 눈꺼풀로 서글프게 내려뜨네요.

우리의 사랑이 이울어 가는겁니다」

 

그러자 그녀는

「우리의 사랑은 이울었지만 다시 한 번

호젓한 호숫가에 서 봅시다.

처량하게 지친 아이, 정열이 깊숙히 잠이 든

온화한 이 시간에 둘이 함께.

별들은 어찌나 멀어 보이는지,

우리의 첫 키스도 얼마나 아득한지 참으로 늙었군요.

나의 마음은」

 

그들은 생각에 잠긴 채 낙엽을 따라 걷다가,

남자가 천천히 여자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정열은 곧잘 방황하는 우리 마음을 피곤하게 했지요」

 

나무가 그들을 에워싸고 노란 나뭇잎이

빛 바랜 별같이 어스름 속에 떨어지는데

늙은 토끼 한 마리가 다리를 절며 오솔길을 달려 온다.

그에게는 가을이 오고,

그들은 다시 한 번 호젓한 호숫가에 섰다.

돌아보니 그녀는

그녀의 눈같이 이슬 맺힌 고엽을 말없이 주워 모아

가슴과 머리에 꽂고 있었다.

 

「아, 슬퍼하지 말아요」

그는 말했다.

「우리가 지친 것은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리기 때문이요.

미움과 사랑으로 후회없는 시간을 밀고 나가요.

우리 앞에는 영원함이 가로 놓였고,

우리의 영혼은 사랑 그리고 끝없는 이별의 연속이니까」

 

 

 

그대 늙었을 때(When You Are Old)

 

그대 늙어 머리 희고 잠이 많을 때

난로가에 앉아 졸게 되거든 이 책을 꺼내 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읽으며, 한때 그대 눈이 지녔던

그 부드러운 눈길이며 깊은 그늘을 생각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다정하고 우아했던 시절을 사랑했고

그대의 아름다움을 거짓 혹은 진실함으로 사랑하였던가를.

다만 한 남자가 그대 순례자의 영혼을 사랑하였고

그대 변하는 슬픈 얼굴을 사랑하였던 것을.

 

그리고 빛나는 창살가에 고개 수그려

조금은 슬프게 중얼거려요.

어떻게 사랑이 달아났고 높은 산을 거닐며

별들의 무리 속에 그의 얼굴을 감추었는가를.

 

 

 

쿨 호수의 백조(The Wild Swans At Coole)

 

나무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으로 단장하고

숲 속의 길들은 메말라 있다.

10월의 황혼녘 물은

고요한 하늘을 비치고

돌 사이로 넘쳐흐르는 물 위에는

쉰 아홉 마리의 백조가 떠 있다.

 

내가 처음 백조의 수를 헤아린 이래

열 아홉 번째의 가을이 찾아왔다.

그땐 미처 다 헤아리기도 전에

백조들은 갑자기 날아올라

요란스런 날개 소리를 내면서

끊어진 커다란 원을 그리며 흩어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지금껏 저 찬란한 새들을 보아 왔건만

지금 나의 가슴은 쓰리다.

맨처음 이 호숫가

황혼녘에 저 영롱한 날개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그때 이래

모든 것은 변해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피곤을 모른 채

짝을 지으며 차가운 물 속을

정답게 헤엄치거나,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들의 가슴은 늙을 줄 모르고

어디를 헤매든 정열과 정복심이

여전히 그들을 따른다.

 

지금 백조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요한 물 위에 떠 있지만

어느날 내가 눈을 뜨고

그들이 날아가 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어느 등심초 사이에 집을 짓고

어느 호숫가나 웅덩이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인가?

 

 

 

 

흰 새들(The White Birds)

 

될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이여,

우리 물거품 위 두 마리 흰 새가 되련만

흐르는 별들의 불꽃에 우리는 지쳐버렸구나.

미처 그 빛이 사라지기도 전에

하늘가 낮게 걸린 황혼녘 푸른 별

그 불꽃이 우리들 가슴에 끝없는 슬픔을 일깨웠네

 

피로가 찾아든다 이슬에 젖어

꿈꾸는 저 백합과 장미로부터

아, 꿈꾸지 마라 사랑하는 이여,

흐르는 별의 불꽃은 사라지리니

푸른 별의 불꽃을 꿈꾸지 마라.

이슬은 내리는데 낮게 걸려 서성이니

될 수만 있다면 떠도는 물거품 위

두 마리 흰 새가 되련만. 그대와 나는

 

수많은 섬들과 수많은 다나안 해안으로

내 마음 이끌린다

시간이 우리를 잊고 슬픔도 다가오지 않는 곳

장미와 백합 그리고 가슴 태우는 불꽃도 이내 멀리 사라지리니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물거품 위를 떠도는

두 마리의 흰 새가 될 수만 있다면

 

 

방황하는 인거스의 노래(The Song Of Wandering Aengus)

 

내 머리 속에 불이 붙어

개암나무 숲으로 갔었지.

개암나무 한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딸기 하나를 낚싯줄에 매달았지.

흰 나방들이 날고

나방 같은 별들이 깜빡일 때

나는 시냇물에 딸기를 담그고

작은 은빛 송어 한 마리를 낚았지.

 

나는 그것을 마루 위에 놓아 두고

불을 피우러 갔었지.

그런데 마루 위에서 무엇인가가 바스락거리더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지.

그것은 머리에 사과꽃을 단

어렴풋이 빛나는 소녀가 되어

내 이름을 부르며 달아나

빛나는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

 

나 비록 골짜기와 언덕을

방황하며 이제 늙어 버렸지만

그녀가 간 곳을 찾아 내어

그녀의 입술에 입맞추고 손을 잡고서

얼룩진 긴 풀밭 속을 걸어 보리라.

그리고 시간이 다할 때까지 따보리라.

저 달의 은빛 사과를

저 해의 금빛 사과를...

 

첫사랑(First Love)

 

하늘에 떠가는 달과도 같이

잔인한 아름다움의 종족으로 자라긴 했지만

그녀는 잠시 걷다 얼굴을 붉히고

내 가는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마침내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몸이

살과 피의 심장을 지니고 있다고

그러나 내 손을 그 위에 올려 놓고

돌의 심장임을 알아낸 이후

나는 많은 것을 시도하였으나

하나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달 위를 지나가는

모든 손은 미치고야 만다.

 

그녀의 미소에 나는 변해서

그만 시골뜨기가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를 서성거리며

달이 나타날 때

하늘에 떠도는 별들보다

한층 더 공허한 마음이 되었다.

 

 

오랜 침묵 후에(After Long Silence)

 

오랜 침묵 후에 하는 말 -

다른 연인들 모두 멀어지거나 죽었고

무심한 등불은 갓 아래 숨고

커튼도 무심한 밤을 가렸으니

우리 예술과 노래의 드높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함이 마땅하리.

육체의 노쇠는 지혜, 젊었을 땐

우리 서로 사랑했으나 무지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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